서양에서의 마음챙김 명상회에서는 필요한 4가지 규율을 RAIN이라는 약어로 가르친다고 한다. 규율은 다음과 같다.

1. Recognition

2. Acceptance

3. Investigation

- Body

- Feelings

- Mind

- Dharma

4. Non-identification

 

 우리말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겠다.

1. 인지

2. 수용

3. 탐구

- 몸

- 느낌

- 마음

- 법(다르마)

4. 비동일시

 

1.인지

 인지는 우리가 어떤 인생의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면 정확히 어떤 문제에 빠져 있는지 직시할 용기와 성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한다. 우리가 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의지가 있어야 자기기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뇨병 환자가 본인의 질환을 부정하거나, 경제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과소비 성향을 무시하는 것, 사회가 가난과 불의의 문제를 모른척하는 것 모두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지할 의지가 없는 것에서 비롯된다. 만약 내가 마음속에 있는 불만족감, 분노, 괴로움, 야심이 끼치는 영향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의 가치, 신념, 소망, 선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나는 반드시 괴로움에 빠질 것이다.

 우리가 인지를 잘 다듬을 수 있다면 알아차림은 마음의 친절한 주인이 될 수 있다. '아, 슬픔이구나, 그리고 이건 흥분이구나, 갈등이 왔구나, 긴장이 일어났구나, 고통이 찾아왔구나, 이번에는 분별심이 일어났구나.' 이렇게 인지력을 잘 닦아 놓으면 어떤 감정이든 친절하게 마음의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는 수행자를 망상과 무지로부터 벗어나 자유에 이르게 한다.

 

2. 수용

 수용은 주어진 상황 앞에 이완된 채로 열려 있을 수 있는 자세를 말한다. 수용의 자세가 없다면 괴로운 감정을 인지해도 저항과 혐오가 뒤따라 올 수 있다. 수용은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겠다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마음과 관계맺는 법을 변화시키기 위한 용기이다.

 있는 그대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수용과 존중의 마음을 기를 수 있다면 당최 감당할 수 없던 난제들도 활로가 트이곤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 건강에 좋은 생선 기름을 먹이기 위해 매일 개와 씨름하며 억지로 개를 고정시키고 입을 벌려 기름을 흘려넣었다고 한다. 어느날 하루는 개가 몸부림을 치다가 생선 기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도망을 쳤는데, 놀랍게도 그 개는 나중에 돌아와 자의로 땅바닥의 기름을 핥았다. 개는 사실 기름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기름을 먹이려는 주인의 강압적인 방식이 싫었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비슷할 수 있다. 불만족감, 분노, 괴로움은 그 자체로 괴로운 것이 아니라 이를 경멸하거나 강압적으로 다스리려는 우리의 태도 때문에 괴로운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용과 존중의 태도는 우리가 감정들과 관계맺는 방식을 극적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다.

 

3. 탐구

 틱낫한 스님은 탐구의 규율을 '깊이 봄(Seeing Deeply)'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지와 수용의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 있다. 탐구의 규율은 이렇게 담아낸 경험을 더 깊이, 더 세세하게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경험을 관찰할 때는 다음 네가지 기반, 몸, 감정, 마음, 법(다르마)를 살펴보라고 한다.

 

- 몸

 먼저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 상황은  근육의 경직, 경련, 열감, 욱신거림, 저림, 두통 등 다양한 형태로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루종일 업무에 시간을 들여도 작은 일 하나도 이루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 때 가끔씩 마음챙김 명상을 해보면 내 감정문제가 상반신 전체를 아우르는 열감, 위장의 팽창감과 복근의 긴장, 두통과 어지러움, 목 위의 경련으로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이 이런 긴장 상태에 있어서야 한 줄의 코드도 짤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신체적인 신호들에 내가 알아차림과 수용의 자세로 열려 있는지, 아니면 강압적인 방식으로 신체적인 증상들을 억누르려 하는지 확인해야한다. 그리고 이런 반응들을 수용할 때 신체적 증상들이 심화되는지, 전이되는지, 확장하는지, 축소하는지, 반복되는지, 사라지는지, 아니면 다른 증상으로 변하진 않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 감정

 다음으로 어떤 감정들이 올라와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대체적으로 즐거운 감정인가? 아니면 불쾌한 감정인가? 그도 아니면 중립적인가? 올라오는 감정들에 그저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알아차림의 자세로 접근하고 있는가? 핵심 감정에 따라오는 부차적인 감정들은 없는가? 보통 감정들은 별자리와 같이 무리를 지어 등장한다. 이혼을 회상하는 돌싱남의 경우 슬픔, 분노, 질투, 상실감, 두려움, 외로움이 한묶음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조카의 마약중독 문제를 제때 도와주지 못한 여자의 경우 갈망, 혐오감, 죄책감, 공허함, 무가치함이 같이 올라왔다고 한다. 마음챙김의 힘을 잘 닦아 놓은 수행자라면 이런 감정들을 각각 제대로 인지하고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각 감정이 신체의 어느 부위에서 드러나는지, 그리고 알아차림을 통해 감정을 가만히 관조했을 때 감정의 흐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할 수 있다.

 

- 마음

 마음을 관찰하면 어떤 생각과 이미지들이 아른거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서사에 혼이 팔렸는지, 무슨 잣대로 어떻게 남을 판단하고 있는지, 어떤 믿음하에 행동하고 있는지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가 가진 관념 중 어떤 것이 특히 편향적이고 경직되어 있는지, 얼마나 습관적으로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런 것들은 그저 익숙한 이야기에 불과할 뿐, 굳이 이것들로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 법, 다르마, 도

 다르마는 여러가지 뜻을 품을 수 있는 단어라고 한다. 다르마라는 말 하나가 진실, 불교의 가르침, 현상의 뒤에 숨은 원리라는 다양한 뜻을 포괄할 수 있다. 불교 수행자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 규율은 불교의 무상과 무아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관찰하고 있는 경험이 정말 체감되는것만큼이나 정적인가? (Is the experience actually as solid as it appears?) 이 경험이 정말로 불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계속 형태를 바꾸는가? 이 경험은 내 통제하에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의 주기에 따라 저절로 생멸하는가? 경험이 밖에서 왔는가, 내 안에서 만들어졌는가? 내가 경험과 관계맺는 방법이 내 괴로움에 기여하는가, 행복에 기여하는가? 그리고, 내가 이 경험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는가?

 

4. 비동일시

 비동일시는 경험을 곧 '나', 혹은 '내 것'이라고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일시의 경험을 관찰하면 이것이 어떻게 의존심, 불안, 집착, 괴리감을 일으키는지 확인할 수 있다. 비동일시의 규율을 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몸과 마음의 모든 상태에, 나의 모든 경험에, 내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을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애초에 경험을 취사선택하여 굳혀낸 우리의 정체성 자체가 지극히 임의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동일시에서 비롯된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We see the tentativeness of this identity. Then we are free to let go and rest in awareness itself. This is the culmination of releasing difficulty throguh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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