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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유년기의 좌절
책의 서문은 저자가 미술가 친구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친구는 자신이 5살 때 그린 그림의 이야기를 하며 저자에게 "내 엄마는 한번도 내가 평소에 뭘 하는지 물어본적이 없어, 내 예술은 물론이고, 뭐, 사실상 모든 면에서 관심이 없으셨지."라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구김없이 하는 친구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유년기에 그들의 정신세계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수 있는 일이다. 유년기때 느낀 허전한 공백감을 성인이 되어서도 마치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싱크홀처럼 여기며, 애꿎은 곳에서 달래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이 미술가 양반은 부모님의 관심이 결여되었던 자신의 유년..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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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without a thinker
2015년, 우연히 이 책을 읽어보고 첫 장에 매료되어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의 이름은 '붓다의 심리학'이었는데, 어릴적부터 모태신앙으로서 불교행사에 참가하기를 강요받으며 자라 별로 불교에 좋은 기억이 없던 나에게, 이런 제목은 도발로 다가왔다. '공덕이니 전생이니 윤회니 꿈같은 이야기만 하는 너희 컬티스트들이 무슨 심리학을 논한단 말이냐?'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을 다니면서, 스님들의 괴팍한 면모를 많이 보고 실망도 자주 한 나였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꺼내든 이유는 불교에 대한 실망감을 한층 더 굳히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일체의 과장을 보태지 않고 말하건데,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책을 읽은 후 원문이 궁금해진 나는 원..
2023.08.28

 책의 서문은 저자가 미술가 친구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친구는 자신이 5살 때 그린 그림의 이야기를 하며 저자에게 "내 엄마는 한번도 내가 평소에 뭘 하는지 물어본적이 없어, 내 예술은 물론이고, 뭐, 사실상 모든 면에서 관심이 없으셨지."라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구김없이 하는 친구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유년기에 그들의 정신세계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수 있는 일이다. 유년기때 느낀 허전한 공백감을 성인이 되어서도 마치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싱크홀처럼 여기며, 애꿎은 곳에서 달래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이 미술가 양반은 부모님의 관심이 결여되었던 자신의 유년기 환경을 마치 카드게임에서 첫 손패가 좀 꼬인 것 정도의 불행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행한 유년기를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심적으로 괴로운 성인으로 자라나고, 또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정신치료의 도움을 찾는다. 이들에게 가장 시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정신치료는 아마 정신분석일 것이다. 왜 A 씨는 평소에 남에게 과시하는걸 좋아하고, 일이 자기 뜻대로 안되면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가? 유년기에 마땅히 받았어야 했던 관심과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그걸 사회적 성공과 인정으로 메우려 했기 때문이다. 왜 B 씨는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는가? 바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이었던 부모 밑에서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봐야만 했던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왜 C 씨는 세상이 통 공허한 것 같고, 본인의 내면은 텅 빈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걸까? 바로 항상 우울했던 어머니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어릴때부터 자신의 정서적 요구를 누른채로 철이 들어야만 했고, 그 때문에 스스로의 정서를 돌아보고 다스릴 역량이 결여된 채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야기들은 실로 명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때때로 이런 분석들은 내담자들을 억울함과 분노의 굴레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저자는 이런 전개를 경계하며, 유년기의 좌절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는 도널드 위니컷이라는 정신분석학자의 통찰을 이야기한다.

 위니컷은 영국의 소아과 의사, 정신분석학자로, 그는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의도적으로 자녀를 실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신생아때부터 전적으로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관계로부터, 부모없이 자립할 수 있는 상태로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이때 필연적으로 따라올 부모역할의 후퇴과정에서 자녀는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위니컷은 이같은 과정에서 생길수밖에 없는 자식의 필연적인 분노와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어머니를 "충분히 괜찮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라고 불렀다. 진짜 목숨을 부지한다는 의미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니고, 부모가 자식의 실망감을 분노나 무관심으로 보복하지 않으면서, 또 자식의 분노에 굴복하지도 않으면서 버틸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자식의 공격으로부터 부모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자식은 부모를 자신의 시다바리(an extension of a child, magically appearing to assuage every need)가 아니라 별도의 한계를 가진 별개의 인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며, 그렇게 되고서야 아이는 부모를 비롯한 외부세계에 대해 사려깊은 감정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부모가 이런 자식의 분노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할 경우, 자식은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된다고 한다. (When the child's hatred and aggresive urges are improperly met, the child's rage knows no bounds, and she becomes relegated to a hell-ish existence)

 저자는 정신분석이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는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분석만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지적한다. (Psychoanalysis helps one to make sense of one's history, but at the same time, it is best read as a long elegy for the intelligibility of our lives). 나 또한 개인적으로 정신분석에 많이 의존했으나, 이런 시도는 실질적으로 나의 분한 감정, 억울한 감정을 다스리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분석을 하면 할수록 같은 부스럼을 피가 나도록 긁는 느낌이었다. 나의 억울한 감정은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는 것으로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비탄에 빠져 꽁해 있는 나의 머리를 갑자기 죽비로 때리는 듯한 불교의 충격적이고도 상남자스러운 현실인식으로부터 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서문에서 등장한 저자의 미술가 친구가 자신의 적막한 유년기 서사 속에 갇히지 않고 쿨하게, "첫 손패가 좀 꼬였지 뭐," 정도의 태도로 과거를 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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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without a thinker  (0) 2023.08.28

 2015년, 우연히 이 책을 읽어보고 첫 장에 매료되어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의 이름은 '붓다의 심리학'이었는데, 어릴적부터 모태신앙으로서 불교행사에 참가하기를 강요받으며 자라 별로 불교에 좋은 기억이 없던 나에게, 이런 제목은 도발로 다가왔다. '공덕이니 전생이니 윤회니 꿈같은 이야기만 하는 너희 컬티스트들이 무슨 심리학을 논한단 말이냐?'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을 다니면서, 스님들의 괴팍한 면모를 많이 보고 실망도 자주 한 나였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꺼내든 이유는 불교에 대한 실망감을 한층 더 굳히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일체의 과장을 보태지 않고 말하건데,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책을 읽은 후 원문이 궁금해진 나는 원서로 책을 구입해 여러번 읽었고, 그 때마다 머리가 깨지는 듯한 충격과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래서 무슨 책인데? 어떤 내용인데?' 라고 물으면 제대로 말을 정리해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아마 책을 읽고 느낀 심상을 마음속으로만 담아 두고, 제대로 글로 정리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 다시금 책을 정독하며 이해한 바를 정리하려 한다.